스플릿 키보드를 쓰다 보니까 오른손 쪽 공간이 꽤 협소해요. 마우스를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마다 키보드에 부딪히는 일이 빈번해서, 아예 트랙볼로 갈아타볼까 하고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86,000원!??!?!
사실 트랙볼도 그렇게 달가운 옵션은 아니에요. 지금 쓰고 있는 MX Master 시리즈의 횡스크롤이 niri(제 윈도우 매니저)와 너무 잘 어울리는 바람에, 이 마우스가 완전 인생 마우스가 되어버렸거든요. 횡스크롤 한 번이면 워크스페이스가 슥 넘어가는 그 감각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MX Master 4를 새로 사자니 그것도 20만원 가까이 하고, 트랙볼도 비싸고... 저는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niri 조작은 키 바인딩으로 어느 정도 해결을 보려고 연습 중에 있어요. 이걸 하다 보니 나름 키보드만으로도 워크스페이스나 앱 간 전환이 꽤 부드럽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횡스크롤 의존도를 줄이는 데는 성공한 셈이에요.
남은 건 이제 제 손목 건강과 마우스 공간 확보뿐이지요.
아무래도 마우스를 쓰면서 손목 건강까지 챙기려면 버티컬 마우스가 제일 합당한 선택이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우스가 움직일 부동산이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우스를 쓸 일이 생각보다 적더라구요. 문서 편집이나 코딩은 네오빔으로 하고, 창 전환도 키보드로 하고, 결국 마우스는 앱 조작이나 인터넷 서핑에서만 쓰게 돼요. 그러다 보니까 정밀한 작업 자체를 안 하게 되니, 트랙볼이라도 괜찮겠더라구요?
그래서 알아봤는데 저 가격이 나와서 뜨악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자
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오픈소스 트랙볼의 존재
ploopy라는 곳에서 오픈소스 트랙볼을 팔고 있었습니다. '파는 물건이 어떻게 오픈소스야?'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여긴 조립 부품 키트나 완제품을 파는 곳이고 설계 자체는 오픈소스에요. 직접 PCB를 그려서 빌드까지 하고 싶은 분은 Schematic을 참고해서 3D 프린팅으로 하우징까지 뽑을 수 있습니다.
MCU는 ATMega32를 쓰고, 센서는 PMW-3360을 사용했더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테지만, PMW-3360은 게이밍 마우스 쪽에서 알아주는 센서 중 하나입니다. 그걸 트랙볼에 집어넣었으니 정밀도는 보장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공 크기였어요. 제 워너비 트랙볼인 슬림 블레이드 프로만큼 공이 크지 않고, 당구공 사이즈의 공을 쓰고 있더라구요. 저는 공이 큰 게 좋아서...
무엇보다 8볼이 올라가 있는게 좀 짜쳐요.
그래서 제 요구사항을 정리해봤습니다.
공 크기는 최대 55mm까지는 갔으면 했어요. 정밀한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공이 크면 러닝커브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니까요. 버튼은 그렇게 많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 좌클릭, 우클릭, 가운데 클릭 정도면 충분하다고 봤구요. 그리고 집에 STM32 뉴클레오 개발보드가 굴러다니고 있는 김에 MCU는 STM32로 결정했죠. 센서는 말할 것도 없이 PMW-3360이구요.
부품을 정리하자면,
항목
부품이름
MCU
STM32
센서
PMW-3360
공 크기
55mm
이렇게 대강 라인을 잡고 작업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회로 설계와 하우징 모델링, 펌웨어 구조까지 구체적인 제작 계획을 세워볼 예정이에요. 과연 18만원짜리 트랙볼보다 싸게 만들 수 있을지... 제 첫 임베디드 프로젝트가 첫 발을 떼는 기념비적인 순간입니다 두구두구.